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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추진의 빛과 그림자
이름 구민교 부교수 단체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특 집 :공공기관의 올바른 역할 재정립을 위하여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 추진의 빛과 그림자


구 민 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부교수

점점 심각해지는 공공기관 부채문제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유럽의 재정위기로 확산되면서 공공부문 부채에 대한 관심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져 왔다. 그때마다 우리 정부는 국민과 시장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정부부채(government debt)GDP 대비 40%대라는 점을 들어 우리나라의 재정 건전성이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논리를 펴왔다. 그러나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정부부채보다 커진 공기업 부채를 포함할 경우 공공부채(public debt)90%에 육박하기 때문에 안심할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꾸준히 지적해 왔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2년 말 기준으로 전체 공기업의 부채는 4934천억 원으로 500조 원에 육박한다. 2008년 전체 공기업 부채 규모가 290조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4년 사이 200조 원 이상 빚이 늘어난 것이다.

지난 이명박 정부도 집권 후반기부터 공공기관 부채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으로 보이나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에서 공공기관 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1312월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발표 시 12개의 공기관이 부채관리 중점관리 대상으로, 20개의 공기업이 방만 경영 중점관리 대상에 지목되었다. 정부는 부채 중점관리 대상 공기업으로부터 국내·외 자산 매각을 통해 2017년까지 총 87,352억 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안을 제출받아 이행을 독려하고 있다. 총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필자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공공부채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그 각론에 들어가면 좀 더 신중하고 체계적일 필요가 있다. 흔히 공기업에게는 청와대, 국회, 기획재정부, 주무부처, 감사원, 지방자치단체, 언론 등 여러 시어머니가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이들 시어머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각론을 내놓고 있다. 최근 일련의 과정을 볼 때 우리나라에서 공기업 직원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다. 문제는 단순히 어려워지는 데에 있지 않고 공기업 직원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대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데 있다. 필자는 공공기관 정상화 추진 때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침해하고 공기업 경영평가를 왜곡하도록 압력을 행사해 권한을 남용했다는 이유로 지난 711일 현오석 부총리를 고발한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을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왜 이들이 그렇게 반발하는지 원점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공기관 정상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정책목표 설정 필요해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 캐치프레이즈는 비정상의 정상화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동물을 소재로 한 우화(寓話)가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 연초부터 “‘비정상의 정상화과제는 작은 과제라도 뿌리가 뽑힐 때까지 끝까지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한 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는 진돗개 정신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박 대통령은 지난 526공공기관 정상화 워크숍에서 공기업 방만 경영 개선을 강조하면서 공공기관이 도도새가 되어선 안 되고 끊임없이 진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인도양의 한 섬에 서식했던 도도새는 천적이 없어 날개가 퇴화된 조류인데, 나중에 새로 섬에 유입된 인간과 포유류에 의해 멸종됐다고 한다. 물론 공공기관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겠지만 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우화들의 교훈은 불분명하다. 누구를 위해 누구의 살점을 물어뜯겠다는 것인가? 공공기관이 도도새라면 이를 멸종시킬 인간과 포유류는 정부와 정치권이란 말인가?

비정상의 정상화는 다분히 정치적 수사(修辭)일 뿐 구체적인 정책목표가 될 수 없다. 공급자인 공기업, 수요자인 국민, 그리고 통합적 관리자인 정부 차원에서의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정책목표의 설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각각의 정책목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마녀사냥 식으로 공기업만을 몰아가서는 곤란하다. 모든 것을 정상화라는 프레임 속에 가두어 버리면 다른 차원에서 냉정한 정책목표의 설정이 어려워진다.

정책목표의 모호성은 크게 사명이해 모호성(mis­sion comprehension ambiguity), 지시적 모호성(directive ambiguity), 평가적 모호성(evaluative ambiguity), 우선순위 모호성(priority ambiguity)의 네 가지로 분류된다. 모호성을 경쟁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정도로 정의할 때, 사명이해 모호성은 조직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이해하는 것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경쟁적 해석의 정도이다. 더 많은 경쟁적 해석이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일수록 모호성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시적 모호성과 평가적 모호성은 각각 추상적인 목표를 구체적인 행동지침으로 변환하고 그 성과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쟁적 해석의 정도를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우선순위 모호성은 서로 충돌하는 복수의 목표들을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발생하는 모호성을 말한다. 이 경우 각각의 목표가 뚜렷하더라도 목표들 간 우선순위가 세워져있지 않다면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정책목표의 모호성은 입법과정에서의 오해를 야기하며 궁극적으로 정책 실패를 불러올 수 있다.

이 중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데 따르는 모호성의 문제가 심각하다. 대표적인 예는 공기업의 해외진출이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는 자원외교, 에너지 자주 개발율 확대 등의 목표를 최우선시 하여 여러 에너지 공기업들의 공격적인 해외진출을 장려한 바 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서는 갑자기 정책방향을 틀어서 부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외자산을 적극적으로 매각하라는 주문을 하고 있으니, 공기업으로서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모르는 판이다. 그러니 한국석유공사가 최근 아랍에미레이트(UAE, United Arab Emirates)의 유전 탐사에서 상업 생산 가능성을 확인하고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우선순위 모호성의 관점에서 보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거시적 차원에서 정책목표가 모호하면 미시적 차원에서 제대로 된 정책수단을 설계할 수 없다.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대전제로부터 공기업 부채관리와 방만 경영 개선이라는 하위 정책목표를 도출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각 기관으로부터 부채감축계획을 제출받고 방만 경영 사례를 발본색원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각각의 구체적인 정책수단들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겠다. 다만 한 가지만 당부하고 싶다. 정부가 기왕에 칼을 빼들었으니 쉬운 일보다는 어려운 일에 메스를 대면 좋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추진방향을 보면 그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우려스럽다. 부채관리 차원에서는 좀 더 어렵고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할 전력산업개편이나 공공요금 현실화보다는 좀 더 손쉬운 공기업 임직원들의 임금인상분 및 성과급 반납, 경상경비 절감 등의 정책수단에 큰 유혹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방만경영해소를 위한 전문경영인 및 감사체제 도입과 같은,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정책수단보다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과다한 복리후생제도철폐와 같은 손쉬운 수단 쪽으로 끌리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올해 초부터 방만 경영의 사례로 공기업 임직원들의 과다 특별휴가가 지적되기도 했었는데, 역설적으로 신년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이 관광산업 육성을 강조하자 정부는 근로자가 국내 관광지로 휴가를 갈 경우 정부와 회사에서 각각 10만원씩 지원하기로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것은 너무 방만한 게 아닌가? 공기업 직원들은 국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다.

공기업의 적극적인 역할 수행을 기대하며

역설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창조경제통일대박의 실현을 위해서는 공기업의 적극적 역할이 필수적이다. 공기업은 시장성과 더불어 공공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어느 한 가지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 때문에 알을 하나씩밖에 못 낳는다고 당장에 거위의 배를 가르려고 할 것이 아니라 먼저 거위의 건강을 차분하게 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지금과 같이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부정적 접근과 더불어 잘 된 것을 더욱 장려하는긍정적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공기업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위험회피적인 접근보다는 개방적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접근도 필요하다.

현재 추진 중인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고 위험회피적인 접근이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지만 그 반대급부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을 지나치게 의심하다 보면 거짓으로 받아들이는 1종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지금 공기업에 대한 정부의 불신은 필요 이상으로 크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 창출과 통일 후 재건사업을 위한 체력 비축이라는 보다 중요한 가치가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정치적 수사 사이로 빠져나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필자는 창조경제와 통일대박의 실현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위험감수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민간 기업은 절대로 창조경제와 통일대박을 위해 먼저 나서서 위험을 감수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아무리 공기업이라 하더라도 위험감수적인 태도는 거짓

으로 받아들이는 2종 오류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창조대박의 과실은 모험과 실패 없이는 생기기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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